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단 편집) ==== [[러시아]] ==== >전쟁이 일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푸틴은 역사적인 패배로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모든 전투에서 이겼을지는 몰라도 전쟁에서는 지고 있다.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겠다는 푸틴의 꿈은 우크라이나가 진짜 나라가 아니고, 우크라이나인들이 진짜 국민들이 아니라는 거짓말 위에 세워졌다. > >그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우크라이나는 천년을 넘은 역사를 가진 나라이며 키예프는 모스크바가 깡촌이었던 때부터 주요 대도시였다. 그러나 러시아 독재자는 이런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자신조차 이를 믿는 것 같다. > >우크라이나 침공을 준비할 때 푸틴은 많은 사실에 의존할 수 있었다. 그는 러시아가 군사적으로는 우크라이나를 깔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NATO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산 기름과 가스에 대한 유럽의 의존이 독일과 같은 나라들이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것을 망설이게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한 그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은 강하고 빠르게 공격하여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참하고 허수아비 정부를 세운 다음 서방의 제재를 물리치는 것이었다. > >그러나 이 계획에는 한 가지 미지수가 있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배웠듯이 나라를 통제하는 것보다는 점령하는 것이 훨씬 쉽다. 푸틴은 그에게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힘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모스크바의 허수아비 정부를 받아들일까? 푸틴은 그들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데에 배팅을 했다. 결국 그가 계속 말해왔던 것처럼 우크라이나가 진짜 나라가 아니고 우크라이나인들이 진짜 국민이 아니라는 것에 말이다. 2014년에 크림 반도를 침략했을 때 우크라이나인들은 강력히 저항했다. 왜 2022년이라고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 >날이 지날수록 푸틴의 도박은 실패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온 마음을 바쳐 저항하고 있고, 전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으며,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할지도 모르지만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통제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받아들일 때에나 가능하며, 일어나기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러시아 탱크 한 대가 부서질 때마다, 러시아 군인이 한 명씩 죽을 때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는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인 한 명이 죽을 때마다 침략자에 대한 그들의 증오도 높아지고 있다. 증오는 나쁜 감정이지만 억압 받는 나라에게 증오는 숨겨진 보물과도 같다. 가슴 속 깊이 묻혀, 세대를 이어 지속될 수 있다. >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기 위해 푸틴은 상대적으로 출혈이 적은 승리가 필요한데 그것이 덜 증오받으며 우크라이나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의 피를 흘릴수록 푸틴은 자신의 꿈이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러시아 제국의 사망 증명서에 쓰일 이름은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푸틴이 될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이 형제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지만, 푸틴은 그들을 적으로 만들고 우크라이나가 앞으로는 러시아를 적으로 대하도록 만들었다. > >국가란 결국 이야기 위에 만들어진다. 날이 갈수록 우크라이나인들은 미래의 암울한 날뿐만 아니라 수십 년과 세대에 걸쳐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수도에서 피난하기를 거부하며 미국에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말한 대통령, 러시아군에게 꺼지라고 말한 뱀 섬의 군인들, 온 몸으로 러시아의 탱크를 막아서는 시민들. 이것들로부터 굳건한 나라는 세워지며, 장기적으로는 이런 이야기들이 탱크보다 더 중요하다. 러시아의 독재자도 누구보다 이것을 잘 알 것이다. 어린 시절 그는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독일인의 잔학 행위와 러시아인의 용맹함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지금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며, 자신은 히틀러의 배역을 맡았다. > >우크라이나인들의 용감함은 그들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결의에 차게 만든다. 그들은 유럽 국가, 미국 행정부를 넘어 러시아에서 억압받는 시민들에게도 용기를 준다. 우크라이나인들이 탱크를 맨손으로 막을 용기가 있다면 독일 정부는 대전차 미사일을 제공할 용기를,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를 SWIFT에서 퇴출할 용기를, 러시아 시민들은 이 미친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용기를 낼 수 있다. 그것이 기부이든, 피난민을 받는 것이든, 온라인에서 싸우는 것이든. >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전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독재와 침략이 이기도록 놔둔다면, 우리 모두가 그 결과에 고통 받을 것이다. 방관자로 있을 수는 없다. 일어서서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이다. > >불행히도, 이 전쟁은 길게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형태를 바꿔가며 수년간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결정됐다. 지난 며칠은 전세계에 우크라이나가 진짜 나라이고 우크라이나인들이 진짜 국민이며, 그들이 러시아 제국의 통치하에 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남은 질문은 이 메시지가 크렘린의 두꺼운 벽을 뚫는 데에 얼마가 걸릴 것인가이다. >---- >[[유발 하라리]],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2/feb/28/vladimir-putin-war-russia-ukraine|푸틴이 이 전쟁에서 이미 패배한 이유]], 2022. 02. 28. 푸틴의 군사적 침공작전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국방부 산하기관 한국국방연구원은 이강규 연구위원이 분석한 논문을 발간했다.[*⚠] [[https://www.kida.re.kr/frt/board/frtNormalBoardDetail.do?sidx=2184&idx=760&depth=2&searchCondition=&searchKeyword=&pageIndex=1&lang=kr|이강규, 『권위주의 체제와 전쟁: 왜 푸틴은 성공하지 못했는가?, 동북아안보정세분석(NASA), [[한국국방연구원]], 2022. 03. 31.]] >아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종결된 것은 아니므로 최후 상태가 어떠한 모습이 될지 예단하는 것은 섣부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이 번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 간에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이 전쟁이 러시아의 전쟁이라기보다는 푸틴의 전쟁이라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의 국가전략 차원에서 볼 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의도한 궁극적인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강력하고 유능한 지도자로서의 푸틴과 군사강국 러시아의 위상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점에서 푸틴에게는 실패한 전쟁이 될 수 밖에 없게 됐다. 이는 이념이나 무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가경영 능력에 대한 인정이 독재자들의 권력 기반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록 러시아 국내에서의 반발이 푸틴의 권력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을 정도인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전쟁으로 카리스마 있는 영민한 지도자로 알려졌던 푸틴의 능력에 의구심이 드리워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 >그렇다면 푸틴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하나의 결과에는 하나 이상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 글에서는 푸틴이 실패한 원인을 흔히 권위주의 체제의 장점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을 그가 실제로는 활용하지 못한 채 소위 독재자의 딜레마에 함몰되어 버린 데서 찾고자 한다. > >귄위주의의 장점? > >민주주의와 달리 귄위주의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유리하다는 것은 주로 그 체제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 >첫째,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개인 혹은 일당이 오래 권력을 쥐고 있으므로 비교적 일관되고 장기적인 전략의 추진이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전쟁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것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 > >둘째, 귄위주의, 특히 독재는 전쟁을 포함한 국가전략의 실행에 있어서 보다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독재자가 어떤 사항을 결심하면 그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국내 여론이나 관료주의로 인한 반발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신속한 결정이 가능하다. > >셋째, 마찬가지 이유에서 권위주의 체제는 필요 시 잔인한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 >넷째, 극단적인 효율성의 추구가 가능하다. 즉, 자원의 맹목적인 동원이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가능하다. 이 속성을 국가정책의 수립과 집행에서 잘 보여주는 예가 중국이다. 중국은 흔히 백년대계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추진한다고 여겨지며, 코로나에 대한 방역대책에서 보듯이 국가의 지시에 따라 대규모 통제가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이러한 속성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푸틴의 연설에서 보듯이 이번 전쟁은 그의 장기적인 전략의 일환이었을 수 있다. 러시아 병력의 동원 상황과 러시아 국내 시위를 진입하는 모습, 민간인 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러시아가 비인도적인 백린탄을 수차례 사용했다는 우크라이나의 주장 등이 앞서 언급한 권위주의의 속성을 뒷받침해 준다. > >독재자의 딜레마 > >그렇다면 왜 푸틴은 이 전쟁에서 성공하지 못했을까 우크라이나를 통상적인 범주의 민주국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권위주의 국가와 민주국가의 전쟁을 다루는 기존의 연구들로는 적합한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가능한 설명으로는 푸틴이 활용할 수 있는 상기의 속성들이 표면적으로 작동했을 뿐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푸틴이 독재자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 그 원인이다. > >독재자의 딜레마란 독재자의 권력을 위한 수단이 오히려 권력을 약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독재자는 명령과 금지를 통해 지배하는 데 이러한 억압기제를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한다. 이러한 억압기제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낳고 이러한 공포가 다시 복종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공포가 복종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포는 불만도 가중한다. 결국 복종을 얻기 위해 억압기제를 사용하면 할수록 불만의 폭발로 인한 권력유지의 위험도 수반된다. 이와 같은 딜레마를 피하기 위해서는 억압과 동시에 충성이 필요하며 신뢰할 만한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시 과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 >푸틴의 문제도 여기에 있다. 독재에 대한 공포로 인해 국가의 역량이 점점 독재자의 개인적 선호에만 맞춰지도록 변해간다. 그에 맞춰 충성을 빙자한 아첨꾼들만이 독재자의 주변에 포진하게 된다. 독재자는 진실을 말해주고 필요한 조언을 제공해줄 생각이 없는 아첨꾼을 자리에 앉히고 이들을 승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독재자는 정보에서 고립될 뿐 아니라 잘못된 정보만, 즉 본인의 선호에만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볼 가능성이 크다. 그 단적인 예가 러시아 연방정보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보판단이 잘못됐다는 인터뷰다. 안드레이 솔다토프라는 웹사이트 아젠투라의 공동 설립자이자 편집인은 러시아 정보기관 활동만 20년 이상 추적해 온 전문가인데 우크라이나인들의 젤렌스키 정권에 대한 지지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저항을 심각하게 오판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그는 상급자들이 푸틴 대통령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하려고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며 대령과 장군 정도에서 정보 조작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진위를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앞서 살펴본 독재의 속성에 비추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한 코로나로 인한 푸틴의 고립이 이 전쟁을 결정하게 된 원인이 됐는가에 관한 미국 정보당국의 논의도 이러한 고립과 정보차단의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 >푸틴의 실패가 주는 시사점 > >푸틴의 실패에서 주목해볼 만한 시사점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권위주의 국가의 일반적인 특성과 관련하여 권위주의 국가가 민주국가보다 우월해질 수 있는 자원의 효율적 동원이라는 것이 명목상으로 가능하나 실질적으로는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중국 당국이 발표하는 각종 통계지표를 그대로 신뢰하는 학자는 매우 드물다. 장부상의 수치가 실제 데이터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데 이러한 검증을 위한 다른 데이터의 활용과 현지 상황에 대한 접근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신속한 의사 결정도 오히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설익은 의사결정이 될 수 있다. > >둘째, 독재자의 딜레마와 관련하여 독재자는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독점하기를 원하고 이를 권력의 한 가지 원천으로 활용하고자 할 수 있지만 그 많은 정보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성은 담보할 수 없으며 그러한 정보는 오히려 독재자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키울 수 있다. 즉, 가치 있는 정보를 받기 위해서 지도자는 타인에게 주는 공포와 타인으로부터의 고립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억압을 통한 공포는 독재자의 권력 유지의 근원이 되기도 하므로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 >마지막으로 독재가 아닌 민주국가라도 그 민주주의의 정도가 다르므로 위와 같은 문제점들로부터 자유롭다고는 보장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결국에는 정치체제의 유형과 무관하게 일국의 지도자라면 올바른 정보의 획득과 그에 기반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러한 정보 제공이 가능한 조직 및 정치문화를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https://www.kida.re.kr/frt/board/frtNormalBoardDetail.do?sidx=2184&idx=760&depth=2&searchCondition=&searchKeyword=&pageIndex=1&lang=kr|이강규, 권위주의 체제와 전쟁: 왜 푸틴은 성공하지 못했는가?, 동북아안보정세분석(NASA), [[한국국방연구원]], 2022. 03. 3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